기록의 시작 · #002

아버지의 첫 현장, 1991

아버지의 첫 현장 이야기를 들은 건, 회사에 들어오고 한참 뒤였다.

건축을 보던 아이

아버지가 어릴 적, 집안에는 건축을 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작은 건물을 지었다 — 5층쯤 되는 건물들이었다. 이모부도 같은 일을 했다.

아버지는 용돈을 받으러 그 현장들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큰 구조물이 한 층씩 올라가는 걸 가까이서 보며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짓는 일에 마음이 갔다.

먼저 건축으로 자리를 잡은 큰형님과 이모부는 스텔라 승용차를 몰았고, 차에는 카폰이 있었다. 사람들이 “좋은 직업”이라 부러워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도 그 모습을 부러워했다.

1991년, 시작

20대 중반이 된 아버지는 인테리어가 앞으로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사동의 한 인테리어 학원에서 도면 프로그램을 배웠다. CAD11. 도면을 처음 컴퓨터로 그리던 시절이다.

마침 큰형님이 실내장식을 함께 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1991년, 아버지의 인테리어가 시작됐다.

개포동 우성아파트, 48평

첫 현장은 개포동 우성아파트였다. 48평. 고객은 할머니와 동갑일 만큼 연세 지긋한 분이었다.

견적을 앞둔 전날, 아버지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공책에 적고 외웠다. 가장 큰 금액은 5천만 원이었다. 다음 날 최종 견적은 500만 원. 그 무렵 은마아파트 한 채가 1억 원이던 시절이다.

거실을 세 번 칠한 날

두 번째 현장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고객은 색을 다루는 일을 하는 분이라, 색감에 유난히 예민했다.

무광 페인트를 조색해 칠했지만, 원하는 색이 아니라고 했다. 수성 페인트는 마르고 나면 칠할 때보다 톤이 밝아진다. 그 미세한 차이를 그분은 알아봤다.

59평 거실을, 아버지는 세 번 칠했다. 같은 벽을, 색이 맞을 때까지.

내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버지가 인테리어를 시작했을 때, 정작 할아버지는 곁에 없었다. 아버지가 군대에 있던 사이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아버지가 말했다.

“내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당신이 평생 하던 건축을 내가 잇는 모습을 뿌듯해하셨을 거다.”

건축을 보며 자란 아이가, 1991년 첫 현장을 시작했다.

1991년,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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