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시작 · #003

아들의 첫 현장

아버지의 첫 현장이 1991년이라면, 나의 첫 현장은 2024년이었다.

단독주택을 꿈꾸며

회사에 들어온 건 2024년 1월이었다. 디자인을 하던 내가 현장으로 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내 손으로 단독주택을 짓고 싶었고, 나에게 꼭 맞는 집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도면에서 현장으로 왔다.

논현 상지리츠빌

첫 현장은 논현 상지리츠빌이었다.

처음 선 현장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언어부터 달랐다. 도면에서 쓰던 말과 현장에서 오가는 말이 같지 않았다. 먼지가 가득했고,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공간과 실제 현장의 거리를, 그날 처음 실감했다.

매스와 마감선

디자인을 할 때 나는 공간을 매스로 봤다. 덩어리, 큰 형태, 비례.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소재 하나, 마감선 한 줄에서 모든 것이 갈렸다. 덩어리로 보던 눈과, 선에서 맞붙는 현실이 처음으로 부딪힌 자리였다.

막막함, 그리고 수치

솔직히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기로 했다. 수치로. 눈앞의 거친 현장을 치수와 숫자로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 디자인에서 온 내가 현장 앞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두 개의 첫 현장

아버지는 1991년에, 나는 2024년에. 한참의 간격을 두고, 우리는 각자의 첫 현장을 가졌다.

아버지가 건축을 보며 자라 혼자 현장에 섰듯, 나는 디자인에서 와 처음 현장에 섰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도면은 현장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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